로저 블렌치가 『오스트로네시아 팽창의 지도』(2009)에서 추정하는 이 어족의 최대 확장기 분포 지역에는 인도양과 태평양의 해안지대가 많이 들어 있었다.
덩치 큰 타이완보다 먼저 알려져 백제 멸망 후 중·일 항로로 부각 15세기 해상 요충지에 류구왕국 바다 건너온 중국인이 지배계층 ‘메이지유신 일본.이웃의 작지 않은 나라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.
[사진 위키피디아] 류구는 두 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260여 년을 지내게 되었다.상당수 류구인이 중국으로 망명했을 뿐이고 류구국왕은 류큐번주를 거쳐 일본국 귀족에 편입되었다.악대를 포함해 98인으로 구성됐다.
애초에는 대륙의 해안지대까지 자리 잡고 있다가 대륙문명의 압력이 강해지는 데 따라 밀려난 것이다.[사진 위키피디아] 8세기 말부터 일본 기록에서 사라졌던 남쪽 섬들이 다시 나타난 것은 997년.
류구열도 중 오키나와현에 속한 것은 남쪽의 절반이다.
630~665년 기간에는 한반도 남해안과 서해안을 따라가는 항로였다.많은 중국인이 오키나와로 건너가 선진기술을 전파하며 지배계층으로 자리 잡았다.
타이완이 머물러 있던 해양문명권을 중국에서는 ‘남도(南島) 문명이라 부른다.[사진 위키피디아] 8세기 말부터 일본 기록에서 사라졌던 남쪽 섬들이 다시 나타난 것은 997년.
1872년 일본이 류구국을 합병.황금알 사라지자 잡아먹힌 거위청나라에 조공을 바쳤던 외국인을 그린 ‘황청직공도(皇清職貢圖·1769년경)에 등장하는 류구인.